최여진은 생각했다. “반호영? 어디서 왔어요? 한번도 못 들어봤는데.” “알 필요없어.” 남자는 매우 매정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옷을 입고 있든 말든 상관없이 그녀를 침대에서 끌어당겨 똑바로 서게 만들었다. 최여진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남자는 양손으로 최여진을 앞뒤로 두들겨 팼다. 최여진은 너무 아파서 한참동안 제대로 숨을 쉬지 못 했다. “당신......” 최여진은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 “당신, 당신 뭐하는 거예요!” 남자의 말투는 매우 불쾌했다. “난 자식같은건 필요없어!” 최여진:“......” 남자는 다시 옷을 입고 간단하게 양치와 세수를 했다. 그동안 남자는 한 마디도 안 했고, 나가기 직전에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돈을 세어본 뒤, 그 안에서 만원짜리 4장을 꺼내어 침대 위로 던졌다. “이정도 줄게, 덕분에 즐거웠어.” “반호영, 당신 거기서요!” 반호영은 뒤도 안 돌아봤다. 그는 사람을 죽일 것만 같은 충동이 들었다. 반호영은 어차피 이번에 남성에 와서 살아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는 부소경에게 따지러 온 게 아니었다. 그가 이번에 남성에 온 제일 주된 목적은 부성웅에게 따지기 위해서였다. 지난 번 부소경과 신세희가 가성섬에 와서, 하룻밤 사이에 가성섬을 지배하고, 큰 형 반호경을 자리에서 내려오게 했다. 반호영은 자신의 거실 아래 비밀 통로로 도망쳤고, 원래 출국을 해서 다시는 가성섬에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는 이제 딱히 가성섬에 미련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날 하필 멀리가는 배가 없어서, 그는 그 은밀한 곳에서 이틀동안 숨어 있었다. 그 이틀이라는 시간동안, 반호영은 가성섬에 사실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다. 가성섬은 여전히 가성섬이었다. 심지어, 반호영은 해변에서 산책하고 있는 형과 형수를 무의식 중에 보았다. 반호영은 그 순간 멍해졌다. 그는 바로 형과 형수 앞에 나타나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형, 형
그리고 그녀의 아이. 너무 너무 귀여운 그 6살짜리 아이. 그 아이는 그를 아저씨라고 불렀다. 운명은 왜 그를 갖고 장난을 치는 거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그는 형과 형수에게 말도 없이 떠난 뒤, 혼자 남성에 왔다. 그는 이미 살아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부성웅에게 그가 자신의 친아빠가 맞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왜 아내를 버린 걸까? 그는 자신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성에서 죽는 게 제일 나았다. 그래서 그는 누가 경찰을 부르던, 자신이 난동을 피우던 두렵지 않았다. 반호영은 뒤도 안 돌아보고 최여진이 예약해둔 방에서 나왔다. 최여진은 뒤에서 화를 내며 소리치고 있었다. “당신, 당신은 내 이름도 안 궁금한 거예요?” “몸 파는 여자 이름을 내가 왜 알아야 하는데?” 최여진:“......” 그녀는 하마터면 반호영 때문에 부러질 뻔한 자신의 허리를 잡고, 꾸역꾸역 옷을 입은 뒤 처량한 모습으로 차를 타고 나왔다. 그녀의 얼굴은 아직도 살짝 부어 있었다.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반호영 사건을 통해서, 어제 세게 맞은 일을 통해서, 최여진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 자신을 사람 취급해 줄 사람은 구경민 밖에 없다는 것. 다른 사람들은 사실 한번도 최여진을 신경 써 준 적이 없었었다. 심지어 이름마저 처음 들어본 이 반호영이라는 사람은, 그녀를 몸 파는 사람 취급했다. 이건 사실상 엄청난 수치와 모욕이었다. 크나큰 수치와 모욕이란 말이다! “반호영! 너 딱 기다려!” “신세희, 너 딱 기다려!” “난 서울에서 제일 부자인 구경민의 아내야, 너희한테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보여주고 말 거야!” 최여진은 운전을 하면서 맹세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차를 구경민의 산속 별장을 향해 운전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최여진은 갑자기 씁쓸하게 웃었다. 남성에서 구경민의 산 속 별장 말고는 그녀는 정말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사람은 고윤희였다. 보름 전, 고윤희는 최여진이 고용한 사람들 때문에 산 꼭대기에서 구타를 당하고 버려졌다. 그녀에게 남아있던 신용카드마저 뺏겨서 그 날 밤, 고윤희는 정말 자신이 죽는 줄 알았다. 그녀는 혼자 산 꼭대기에 웅크리고 있었고, 곳곳에서 산 짐승과 새소리밖에 안 들렸다. 하지만 그 순간 고윤희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어차피 곧 죽을 사람인데 두려울 게 뭐가 있을까? 산 꼭대기에 누워서 고윤희가 온 몸이 너무 아파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었을 때, 머릿속에 구경민이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그래. 그는 한번도 그녀에게 무언가를 약속한 적이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그저 하녀 대하듯이 대해줬다. 단지 구경민이 너무 착해서 하녀에게 좋은 대우를 해줬을 뿐이고, 그래서 매번 외출을 할 때 그녀를 데리고 다니다 보니 그녀도 자신이 누구였는지 까먹게 되었다. 사실 그녀는 여전히 하녀였다. 심지어 그가 그녀에게 알려준 비밀번호도, 다 진짜 여자친구의 생일이었다. 내일 아침 날이 밝아서 은행 문이 열리면, 그녀가 모아둔 2억 남짓의 돈은 그 여자친구가 다 인출해 가지 않을까? 그럼 고윤희는 정말 살아갈 수가 없었다. 산 꼭대기에 누워있는 그 순간, 고윤희는 신세희를 떠올렸다. 하지만, 신세희가 아직 힘든 일을 겪고 있는 게 떠올랐고, 앞으로 신세희의 생사도 정해지지 않은 와중에, 그녀가 어떻게 신세희를 찾아갈 수 있을까? 설령 신세희가 그녀를 도와줄 수 있다고 해도, 그녀는 지금 당장 핸드폰도 없는데 어떻게 신세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신세희를 생각하니, 고윤희는 신세희의 어린 딸이 생각났다. 그렇게 어린 딸이 벌써부터 사람을 걱정해주는 법을 알았다. 어린 아가씨가 그녀에게 준 인형을 그녀는 꺼내 보지도 못 했다. “유리… 유리야, 넌 참 착한 아이야. 윤희 이모가 과연 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산 꼭대기에 누워있던 고윤희는 추워서 계속해서 몸을 떨었고,
그렇게 아무 것도 없이, 통신망도 없는 상황에서, 그녀는 길에서 먹을 걸 구걸하고,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가 장장 2주를 걸어서 다시 구경민의 산속 별장에 돌아오게 되었다. 고윤희의 생각은 간단했다. 그녀는 심지어 이미 2주나 지났으니 구경민이 아직 여기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구경민은 자신의 진짜 여자친구를 데리고 이미 수도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그녀는 남성에서 신세희와 신세희 친구들 빼고는 달리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가 여기로 돌아온 건, 몇몇 가정부들이 그녀를 알아볼 거라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가능하다면 돈 좀 빌리고 옷을 갈아입은 뒤, 지낼 곳을 찾아 일자리를 찾고 싶었다. 만약 집에 있는 가정부들과 대화가 잘 통한다면, 그녀는 안에 있는 옷들까지 가져올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당시에는 그녀가 너무 토라져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고윤희는 가만히 안을 들여다보며 가정부 중 누구라도 나오길 기다렸지만, 예상치도 못하게 그녀를 죽일 뻔했던 최여진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네가 감히 돌아오다니!”최여진은 발로 고윤희의 손을 밟았다. 밟혀서 통증을 느낀 고윤희는 이를 꽉 깨물고 애써 아픔을 참았다. 최여진은 다시 쭈그려 앉은 뒤 고윤희의 더러운 얼굴을 잡았다. “지금 네 몰골이 어떤지 봐봐. 만약 내 남자가 네 이런 꼴을 보면, 길에서 온 강아진 줄 알고 발로 차서 내쫓아버릴 걸?” 고윤희의 눈동자엔 흔들림이 없었다. 그녀는 최여진을 보지 않고 나약하고 갈라진 목소리로 평온하게 말했다. “저는 그쪽 남자를 뺏으러 온 게 아니에요. 전 단지 음식 좀 먹고 살고 싶어서 그래요. 제 옷… 어차피 그 쪽이 안 입을 거니까, 부탁인데… 혹시 저한테 다시 버려주시면 안될까요?” 최여진은 차갑게 웃었다. “벌써 2주나 지났는데, 네 옷이 아직도 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내가 이미 다 불에 태워버려서 잿더미로 변했고, 내가 별장 전체도 다 소독했어! 넌 진짜 뻔뻔한 년이야! 난 네
전화 너머 구경민의 말투는 무거우면서도 풀이 죽어 있었다. “여진아, 너 하루동안 어딨었어?” 최여진은 고윤희를 한번 보고 달콤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 잘 있었어, 왜 오빠? 내가 그렇게 걱정됐어? 나 잠깐 바람 쐬러 다녀온 건데 걱정한 거야? 내가 밖에서 노는 거 좋아하는 거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 “집에 돌아와 봐.” 구경민은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지금?” “응.” 구경민은 몇 초 동안 침묵하다가 엄청난 결심을 한 것처럼 이어서 말했다. “여진아, 우리 떨어져 있었던 시간이 너무 길었던 거 같아. 거의 10년이잖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는…” 최여진은 공기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심지어 핸드폰을 들고 있는 그녀의 손도 하얘졌다. 그녀는 속으로 그가 하는 말을 듣고싶지 않다는 생각을 천번 만번이나 했다. 그러나, 몇 분 동안 침묵하던 구경민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우리 헤어지자.” 이 순간 사실 그녀는 이 말을 들을 걸 예상했었지만, 직접 귀로 들으니 최여진의 마음은 칼에 맞은 것처럼, 바늘에 찔린 것처럼, 근육이 찢어진 것처럼 아팠다. “경민 오빠......” 최여진은 애써 개의치 않는 말투로 말했다. “왜 그런 말을 하는거야?” 그는 전화 너머 차갑게 웃고 있었다. 최여진은 여전히 최여진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온 여자였다. 이것도 나쁘진 않았다. 이런 최여진은 상처를 안 받지 않을까? “돌아오면 다시 자세히 얘기해자.” 구경민은 간단하게 대화를 끝냈다. 그의 말투에선 어떠한 미련도 느껴지지 않았다. 최여진은 한참 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몇 분 뒤, 그녀는 그제서야 차 문을 열고 안에 웅크리고 있던 고윤희에게 말했다. “나쁜년! 방금 오빠가 나한테 전화해서 뭐라고 했는지 알아?” 고윤희는 힘없이 말했다.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면, 왜 우리 집 문 앞에 나타난 건데? 다 너가 내
“그냥 뒷탈없이 깨끗하게 처리만해!” 최여진은 호되게 말했다. “누나, 가격은…” “20억!” “근데 우리 사람이 다섯이야. 인당 4억 받게 못 받는데… 우리 인당 20억씩 주면 할 게!” “그래서 총 100억 달라고?” “누나, 100억이 뭐야, 1000억도 누나한테는 별 거 아니잖아…” 최여진은 또 무섭게 웅크려 있는 여자를 노려봤다. “100억? 이런 별 것도 아닌 년 하나 처리하자고 내가 100억이나 쓰라고?” 그녀는 망설이다가 결심했다. “그래, 100억이면 100억이지. 대신 꼭 깨끗하게 처리해야 해!” 전화를 끊은 뒤, 최여진은 고윤희의 얼굴을 밟았다. “100억! 네 까짓 게 뭐라고! 내가 100억이나 쓰게 만들어!” 고윤희는 이미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았다. “다행이네요, 제가 100억만큼의 가치가 있다니. 게다가 죽을 때가 다 된 저한테 남자 4-5명이나 선물로 주고말이에요! 여진 씨 정말 통도 크시네요.” “여진 씨는 제일 좋을 때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느라 하루도 경민이랑 함께 하지 않았었지만, 저는 제가 제일 행복할 때 경민이의 세심한 관심과 배려를 받았었죠. 저는 여자로서… 이미 만족했어요, 하지만 여진씨는요?” “너 죽고싶어?” “저는 오늘 죽고싶지 않아도 죽겠죠. 죽는 마당에 하고싶은 말도 못 하나요?” 고윤희 때문에 열이 받았다. 그리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 했던 허무함이 느껴졌다. 고윤희가 말했던 것처럼, 최여진은 사실 제일 좋은 시기에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걸 떠올린 순간, 최여진은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너네 얼른 와! 해 지기 전에!” 전화를 끊은 뒤, 최여진은 가만히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고, 하루종일 그녀도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리고 고윤희는 너무 배가 고파서 여러 번 기절할 뻔했다. 하지만 산 꼭대기라 바람도 너무 심하게 불고, 날씨도 추워서 그녀는 정신이 자꾸 돌아왔다. 머리속에 아무런 생각도 안 들고, 반
4-5명의 남자들은 고윤희를 건드리려고 했으나, 그들 곁에 갑자기 엄청 많은 뱀들이 기어왔다. 빨간 뱀과 초록 뱀들은 어두운 빛을 눈에서 뿜어내고 있었으며, 서늘한 산 꼭대기위의 뱀들인지 더 차갑게 느껴졌다. 놀란 남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고윤희는 힘없이 눈을 떴다. 그녀는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똑같이 죽음이니 말이다. 뱀에 물려 죽는게 어쩌면 더 좋은 결말일지도 모른다. 그 무리의 남자들이 내려간지 몇 분 안돼서, 다리를 절고 있던 남자 한 명이 고윤희 앞으로걸어왔다. 그는 매우 정확하게 한 손으로 뱀들의 목덜미를 잡고 뱀을 한 마리씩 봉지 안으로 넣었다. 고윤희는 힘겹게 눈을 뜬 채로 앞에 있던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대략 40대 정도로 보였다. “누구…세요?” 고윤희는 힘겹게 물었다. 남자의 목소리는 무던하면서도 조금은 나이든 느낌이 있었다. “저는 이 산에 사는 사람이에요. 늙은 저희 어머니랑 같이 서로 의지하면서 살고 있죠. 어머니가 몸이 많이 약해서 눈이 잘 안 보이시는데, 어머니한테 보약을 사드릴 돈이 없고 지낼 곳도 없어 이 산에서 지내고 있어요. 마침 독 없는 뱀을 잡았어서...” “아가씨는 누구한테 잘못을 했길래 저 사람들이 이렇게 까지 하는거예요?” 남자가 물었다. “먹… 먹을 것 좀… 주세요. 먹을 게 필요해요.”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네, 잠깐 기다려요, 갖다 드릴게요.” 남자가 줄 수 있는 건 고작 과자 한 조각과 물 조금이었다. 이것밖에 없어도 고윤희는 맛있게 먹었다. 뱃속에 음식이 들어가니 그녀의 정신도 많이 돌아왔다. “아가씨, 제가 업고 내려가 줄까요?” 남자가 물었다. 고윤희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전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진데, 안 괜찮을 게 뭐가 있나요 그렇게 해주시면 너무 고맙죠.” “갑시다, 제가 업고 내려가 드릴게요. 저랑 어머니는 벽돌집에 살고 있어요, 우선 저희 어머니랑 같이 하룻밤 자고 날 밝으면 데려다 드릴게요. 아
그녀는 남자의 등에 업혀서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 집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없었어요. 제가 예전에 잘못한 게 많았거든요. 저 살려주셔서 감사해요 아저씨. 만약 괜찮으시다면 제가 당분간 어머님 보살펴 드릴게요. 나중에 제 몸이 좀 괜찮아지면 하산하고 일 자리 찾아서 그때 가서 보답도 해드리고요.” 남자는 순하게 웃었다. “좋아요.” 이렇게 고윤희는 산 속에 살고 있던 중년 남자에 의해 구해졌다. 가끔 그녀는 비록 운명이 많이 뒤틀렸더라도 자신의 명줄이 길다고 생각했다. 몇 번이나 죽을 뻔했지만 다 구해졌으니 말이다. 앞으로 그녀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자신의 두 손만 의지해서 살아갈 생각이었고, 재벌이 되지 않아도 괜찮으니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면 됐었다. 이 날 저녁, 고윤희는 벽돌집 안에서 늙은 어머니의 보살핌 아래, 따뜻한 국물이 있는 야채국수와 산에서 말린 고기를 먹은 뒤 만족스럽게 잠에 들었다. 그리고 같은 날 저녁, 최여진은 다시 구경민의 산속 별장으로 돌아왔다. 저녁 10시, 구경민은 거실에 앉아서 최여진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는 꼭 이 일을 빨리 해결하고 싶었다. 아니면 그의 마음은 하루가 갈수록 고통스러워질 것 같았다. 저녁 11시가 되자, 최여진은 술에 잔뜩 취해서 돌아왔다. 그녀는 구경민 앞으로 다가와, 그의 양복 넥타이를 잡은 뒤 무표정으로 있는 구경민의 얼굴을 보았다. “오빠, 내가 16살 때부터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했었지.” 구경민은 여전히 차가운 얼굴이었다. “네가 필요한 만큼 돈은 다 줄게. 내가 너 앞으로 의식주 걱정할 일 없게 해줄 수 있다고 장담해줄 수 있고, 네가 세계여행 하고 싶으면 가도 돼.” “난 이미 놀만큼 놀았어. 난 오빠한테 시집갈 거야!” 최여진은 박력있게 말했다. “오빠가 그랬잖아, 내가 오빠 마음 속에 백조라며! 나 평생 지켜주겠다며!” “근데 여진아, 가끔은 사랑으로도 이겨낼 수 없는 것들이 있어. 몇 년 동안 돌아오지도 않고 막무